원화를 바탕으로 그렸는데, 원화에 일색이 강해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 한국적인 매력을 담을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비록 이틀 안에 작업을 마쳐야 하는 상황이라 깊이 고민하진 못 했지만 어느 정도의 소소한 효과는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시란 외에도 겐트의 건축물에서 일본의 색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나, 일본어로 된 명칭이 있는 것 등, 던전앤파이터에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것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던전앤파이터가 중국, 일본 등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만큼, 한국 게임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트웍과 관련해서는 제가 꾸준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미 공개된 디자인이나 명칭 등의 기획과 관련된 부분은 제 업무영역을 벗어난 부분이라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계속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잠시 다른 이야기로 샜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작업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수다스럽고 유유자적한 성격이라 느긋하게 걸터앉아있는 모습으로 잡았습니다. 왼다리는 편하게 쭉 편 상태에서 오른다리는 자연스럽게 굽혀 몸을 지탱하는 자세로 하고, 성격에 맞게 오른손에는 술병을 들고, 왼팔에는 커다란 칼을 기대었습니다.
웃옷을 벗겨 상반신의 다부진 근육이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초기 디자인의 목표 중 하나였는데, 원화에서는 이것이 일색을 강하게 만들어버려 이번 그림에서는 한복의 두루마기로 보일 수 있게 그렸습니다. 사실 맨몸에 두루마기를 걸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다른 옷을 겹겹이 입힐까 하다가 목표에 부합하지 않아 포기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한복의 특징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아쉽네요.
이런 아쉬움이 나머지 부분에서 채워질 수 있도록 술병은 실존하는 우리나라 백자를 참고했고, 칼 역시 전통적인 환도를 참고했습니다. 특히 청화백자는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것이라 즐겁게 그렸습니다.
기본적인 동세를 바탕으로 세세한 근육의 형태를 묘사했습니다. 유저들로부터 기존의 남성 캐릭터들은 거너처럼 너무 마르거나, 프리스트처럼 덩치가 과하거나, 귀검사처럼 키가 너무 작은 녀석들 뿐이고 전형적인 미남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많아 작정하고 몸매 좋은 미남으로 그렸습니다. 설정상 브왕가보다 나이가 많은 중년의 아저씨라 나이가 들어 보여야 한다는 기획자의 요구가 있었지만, 미남 부족을 이유로 계속 우겨서 약간의 흰 머리와 턱수염으로 타협했습니다.
뼈대가 되는 체형과 근육의 형태를 모두 잡은 뒤에 옷의 주름과 소품의 세세한 형태를 그렸습니다. 항상 그렇지만 옷주름은 그릴 때마다 어려워서 사진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회사에 패션쇼 화보집이 있는데, 온갖 종류의 옷이 있어 각각의 옷감이 다양한 자세에서 어떻게 주름이 지는지 참고하기에 상당히 좋았습니다. 물론 이번엔 한복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에 따로 한복의 사진도 많이 봤습니다.
백자의 청화는 실존하는 것을 그대로 옮겼고, 환도 역시 전통적인 특징이 잘 드러날 수 있게 큰 수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대략의 밑그림이 끝난 뒤에 선을 정리하고 배색을 했습니다. 세세한 형태는 앞의 과정에서 모두 정했고 원화도 이미 있는 상태여서 특별한 고민은 없었습니다. 백자의 무늬나 흉터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계획만 어느 정도 잡았습니다.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피부색을 먼저 묘사했습니다. 최근에는 손등의 주름이나 혈관 등의 묘사를 연습하여 적용했더니 그림이 조금 더 탄탄해졌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세부 묘사에 조금 더 신경 썼습니다.
피부의 묘사량에 맞춰 옷과 머리카락을 그렸습니다. 옷 부분처럼 어두운 색을 묘사할 때에도 단순한 색상으로 채색하지 않고 색상과 채도를 다양하게 변화시켜 심심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개인작에서는 조금 더 과감한 색을 사용하지만 아무래도 아직 회사작업에는 조심스럽네요.
백자는 먼저 대략의 색감과 무늬를 정한 뒤, 기본적인 명암을 모두 그리고서 Multiply 레이어를 활용해 무늬를 넣었습니다. 청화의 매력을 잘 살리기 위해 농담의 차이와 안료가 뭉친 곳을 표현하는 데에 꽤 신경을 썼습니다.
기본적인 명암이 모두 그려졌으므로 낭인의 느낌을 더하기 위해 Multiply 레이어를 추가하여 때와 얼룩을 묘사했습니다. 또한, 잊고 있던 흰 머리를 이제서야 추가했습니다. 그릴 때에는 몰랐는데, 환도에 달린 술의 위치가 애매하여 마치 팔에 박힌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아쉽습니다.
전체적으로 Screen 레이어를 활용해 빛이 번진 느낌을 추가하고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