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ra, Slayer

 인다라천은 귀검사의 전직중 하나이며, 시력을 버리고 파동의 힘을 깨우친 아수라가 마침내 번개의 힘을 얻은 모습입니다. 처음으로 그렸던 캐릭터 일러스트가 대암흑천인데 5년이 지난 후 다시 인다라천을 그리게 됐습니다. 사실 다른 일로 바빠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팀 전체가 바쁜 상황이라 주말에 밤을 새서 완성시켰습니다.

 아수라는 일반적인 검술이 아닌 파동의 힘을 다룬다는 특이한 설정이어서 일러스트를 그릴 때 귀검사의 다른 직업과는 달리 특수효과를 강조하고 독특한 자세를 표현했습니다. 새롭게 그린 인다라천 역시 검술보다는 특수한 힘을 끌어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으며 특히 번개를 쓰는 기술이 많습니다.
 인다라因陀羅는 산스크리트어 Indra의 한자 음역이며, 초기 힌두의 신을 수용한 불교의 최고신입니다. 제석천帝釋天이라고도 불리는 인다라에서 따온 이름처럼, 불교의 색이 강하고 기술 중에도 인드라의 무기이자 번개의 상징인 바즈라가 등장하는 것이 있기 때문에, 중국과 인도의 색을 내며 동시에 번개의 느낌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인드라는 우리나라 토속신앙에도 깊게 뿌리를 내린 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국적인 느낌도 가미하고 싶었는데, 마침 사자탈춤이 떠올랐습니다. 번개를 뿜는 사자탈을 상상하니 너무 마음에 들어 자료조사를 했는데, 사실 사자탈춤도 인도의 의장무에서 유래했고, 그것이 널리 유행하여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라고 합니다. 마침 의도했던 방향과도 잘 맞아 사자탈의 형태를 차용하기로 했습니다. 따로 작업되어 있는 원화가 없었으므로 일러스트를 그리는 동시에 디자인을 잡았습니다.




 대암흑천은 독특한 느낌을 내기 위해 제가 직접 목검을 들고 이리저리 자세를 취해보며 만든 자세였으나, 이번엔 조금 더 동양적인 느낌을 내기 위해 중국무술을 바탕으로 그렸습니다. 일러스트를 그릴 때에는 자연스러운 묘사를 위해 웬만하면 그림으로 그릴 자세를 직접 취해보는 편인데, 이번 것은 워낙 몸을 이리저리 비틀고 있는 자세여서 포기했습니다.
 불교의식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흰두교의 인드라가 사용하는 전설의 무기이기도 한 바즈라를 변형하여 칼의 형태를 만들 계획입니다. 익숙한 반식대로 칼날을 환도에 가깝게 그렸더니 바즈라와 잘 어울리질 않네요. 곧게 뻗은 양날검으로 수정할 생각입니다. 머리카락은 앞서 적은 것처럼 사자탈의 느낌을 내기 위해 특이한 대걸레 질감으로 표현했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표현 방식은 아니어서 호불호가 크게 갈릴 것 같습니다. 처음 그려보는 방식이라 그리기가 조금 어렵기도 했습니다. 뒤쪽에 언뜻 보이는 구슬 모양의 선들은 인종의 플라즈마 같은 것을 상상하며 그린 것입니다. 전기 구슬 같은 것들을 원형으로 배치하여 만다라 느낌을 낼 계획입니다.




 대략의 색감과 명암의 흐름을 잡았는데, 이 과정에서 고민이 정말 많았습니다. 평범한 조명과 색감으로 번개만 강조할지, 번개의 느낌을 최대한 강조하여 푸른빛으로 피부를 묘사할지에 따라 색감이 크게 달라지는데, 평범한 색감으로 작업하기엔 번개의 강조가 쉽지 않고 푸른빛을 강조하자니 그림이 엉망이 될 것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위에 있는 것 외에도 색감 시안을 세 가지 이상 만들었습니다. 마음처럼 쉽게 방향이 잡히지 않아 계속 그리면서 이리저리 비교하고 고민한 결과, 어차피 그리는 거 평소 해보지 않았던 화끈한 번개 느낌을 내기로 하고 완전히 푸른빛으로 전체 색감을 잡았습니다.
 조금 들어간 붉은색은 번개 때문에 타들어가는 옷을 표현한 것입니다. 얼굴의 왼편을 보면 안대 역시 불타며 날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안대는 감고 있는 눈을 보여주고 싶어 끼워맞춘 부분입니다. 피부색 때문에 닥터 맨하탄 같네요.




 색감을 잡으며 명암을 묘사하다 보면 미처 고려하지 못 한 문제 때문에 형태를 수정해야 하는 부분이 보이게 됩니다. 밑그림을 그리며 시안을 잡지 않으면 이러한 부분을 상당수 놓치게 되어 많은 수정이 필요해질 수 있습니다. 숙련도가 꽤 높아져도 예상대로 안 그려지지 않는 부분이 꽤 많습니다. 생각만으로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우니 간단하게라도 직접 그려보는 것이 좋습니다.
 밑그림을 수정하며 선을 정리했습니다. 뒤쪽에 그리려던 구체는 막상 시안을 잡아보니 묘사가 난해하여 다른 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배경이 있는 일러스트였다면 배경에 맞춰 채색을 하면 되겠지만 캐릭터 일러스트는 범용성을 위해 배경을 투명하게 비워야 해서 경계선이 불분명한 것은 그리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이 때문에 플라즈마나 번개구름 등을 포기하고 불교적 색채에 맞게 수레바퀴를 변형한 형태를 넣었습니다.
 개인작이었다면 얼굴에 탈을 씌우는 등으로 사자탈의 느낌을 훨씬 강조했겠지만 대중성이 매우 떨어질 것이 우려되어, 보편적인 미남형으로 그리되 허리에 탈 장식을 매기로 했습니다. 탈 느낌의 얼굴화장을 할까 하고 시안도 여럿 만들었으나 고민 끝에 결국 뺐습니다. 특이한 느낌은 줄 수 있지만 지나치게 호불호가 갈릴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아무래도 회사 작업을 하면 개인작에 비해 이런저런 제약이 많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개인작이라면 이렇게 선 정리를 하느라 고생하지 않아도 되고 투시나 비례를 정확하게 맞춰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실제로 개인작은 투시나 인체비례를 무시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회사에서 그리는 것은 혼자만 만족하면 되는 작업이 이니기 때문에 개인적인 욕심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심지어 던전앤파이터는 운 좋게도 직접 만든 그림체인데도 불구하고 꾸준히 방향을 유지하려니 피곤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나 원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로 새롭게 일을 시작하는 신입들은 본인이 직접 그림체를 잡거나 방향성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 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훨씬 많을 수 있습니다.
 굳이 게임 관련 직종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그래픽 디자인 업무에서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합니다. 제작 여건이나 사용자, 혹은 관리자가 요구하는 방향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작업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순수예술과 회사에서의 업무는 굉장히 다릅니다. 이 때문에 학생 시절 자신이 꿈꾸던 낭만을 찾지 못 해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같은 제약 흥미롭게 반아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해진 틀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틀 안에서 더 잘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하고, 모두 똑같은 결과를 내는 것도 아닙니다. 제약 안에서의 특이성은 언제나 있게 마련하고 그것을 잘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특별한 개성은 없지만 누구보다 뛰어난 완성도로 작업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큰 방향이나 틀 자체를 바꾸기도 합니다. 순수예술이 아닌 상업적인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는 이상은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야기가 잠시 다른 곳으로 샜는데 더 길게 적진 않고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대부분의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피부를 먼저 그리며 전체 색감을 잡았습니다. 꼭 피부색으로 기준을 잡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그림은 주가 되는 빛이 목 언저리에 있어 피부색에 큰 영향을 끼치고, 그림에서 차지하는 면적 또한 피부가 가장 넓어 기준으로 잡기 좋았습니다. 피부 외에는 어두운 색이 많이 쓰일 예정이어서 정확한 색감을 확인하기 위해 바지에 간단한 밑색을 칠했습니다.
 아무리 정확한 눈을 가지고 있어도 주변에 비교가능한 다른 색이 없이 그리면, 막상 다른 부분을 그렸을 때 예상했던 느낌과는 많이 다르게 그려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흰 배경에서 장시간 작업한 그림을 어두운 배경에 올려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밝아 원하는 느낌이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단 그린 후 다른 부분을 그리며 전체적으로 수정하는 방법도 있지만, 수정을 후반으로 미룰수록 작업량도 커지기 때문에 미리 수정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기에 잡은 계획은 매우 과감하게 빛을 활용한 반면 색감이 지나치게 단조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푸른빛을 유지하는 선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색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부분적으로 보라나 회색빛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미세한 변화라도 이것이 없으면 자칫 색이 단조롭게 느껴지고 전체가 엉뚱한 질감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명암을 묘사할 때에는 밝음과 어둠의 색 변화도 중요하지만 채도와 반사광의 변화, 각 부분 사이의 책 차이도 굉장히 중요하니 최대한 다채로운 색상으로 그리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한 부분의 색을 만든 뒤 그림 전체에 같은 색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특이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색감이 매우 단조로워지므로 지양해야 합니다. 다만 지나치게 다양한 색을 균형에 맞지 않게 사용하면 난잡해질 수 있으니 적당한 선을 찾도록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먼저 큰 명암의 흐름을 잡고 세세한 형태를 묘사합니다. 작업과정을 일부러 자세히 남기진 않아서 첫 단계부터 꽤 세밀한 형태가 그려져 있네요. 그래서 그냥 보기엔 대체 뭘 크 것부터 잡았다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워낙 오래 그려서 이젠 바로 세부묘사를 하기 때문인데, 앞서 말했던 단계가 그림으로 남아있지 않을 뿐 머릿속으로는 항상 첫 단계로 덩어리를 나누며 시작합니다.
 세세한 근육의 형태가 묘사되어 있더라도, 초점을 흐리고 전체를 보면 꽤 단순한 명암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단순한 그림으로 보면, 아주 복잡해 보이는 피부의 묘사도 결국 위와 같은 큰 흐름을 유지한 채 부분적으로 묘사를 진행했을 뿐입니다. 여러 번 말했던 것처럼 묘사하는 과정에서 초반에 잡은 균형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빛을 받는 밝은 부분의 묘사를 위해 점점 어두운 색을 사용하고, 어두운 부분을 묘사하기 위해 점점 밝은 색을 쓰다 보면 빛을 직접 받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균형이 깨져 빛 방향이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물론 정확한 명암을 표현하기 위해선 먼저 정확한 형태를 알아야 하니 인체에 대해 부지런히 공부해야 합니다.




 왼쪽을 보면, 복근의 묘사를 마쳤음에도 전체적으로 어두운 계열은 색 안에서 표현했기에 빛을 받는 윗부분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하나의 빛을 기준으로 확인한 명암을 잡은 뒤에 역광이나 반사광 등 부가적인 요소를 묘사했습니다. 여러 광원에 의한 복합적인 명암을 한 번에 그리는 건 어려우니, 모형을 만들어 조명을 하나씩 켠다는 생각으로 광원을 하나하나 차례대로 적용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피부색으로 기준을 잡은 뒤부터 다른 부분은 굉장히 빠르게 작업했습니다. 다행히 크게 어렵거나 복잡한 형태가 없어 작업이 수월했습니다. 다만 색다르게 표현하려다 보니 머리카락이 조금 애매했습니다.




 먼저 왼쪽과 같이 머리카락의 큰 흐름을 잡았습니다. 단조로운 색감이 되지 않도록 일부러 여러 색을 마구 쓴 것이 보입니다. 큰 흐름을 색감을 잡을 때에는 이렇게 뒷정리를 생각하지 않고 마구 칠해보는 편입니다. 처음부터 깔끔하게 그릴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그리면 대담한 명암이나 색감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왼쪽 단계에서 잡은 큰 흐름을 유지하며 오른쪽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작업이 급하게 진행되어 처음에 계획했던 것처럼 한 올 한 올이 보이는 특이한 머리카락을 표현하지 못 한 것입니다. 부분적인 명암이나 색감보다는 의도한 방향을 잘 살려서 그리는 것이 훨씬 중요한데 그러지 못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붓질이 그대로 느껴지는 왼쪽 시안의 느낌이 저 좋습니다. 오른쪽은 미역 같기도 하고




 이제 몸체의 묘사는 모두 끝났으므로 본격적인 번개 묘사를 시작합니다. 번개는 최후의 도시 칸티온폭룡왕 바칼 일러스트에서 그린 적이 있는데, 경험상 처음부터 예쁜 모양을 만드려고 애쓰면 오히려 잘 진행되지 않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즉흥적으로 그리면 마음에 드는 선이 간혹 나오고, 그렇게 나온 선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묘사를 시작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위에선 밝은 색으로 대략의 형태만 그렸지만 완성상태를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습니다.
 번개는 푸르스름한 바탕색 위에 흰색에 가까운 밝은 색을 얹는 것이 무난합니다. 그림 전체의 색감에 맞춰 최대한 푸른빛을 빼는 경우도 있는데,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강하므로 큰 걱정 없이 그렸습니다.
 일일히 짙은 파랑부터 밝은 색까지 그리는 방법도 있지만, 다른 부분과 달리 대부분의 특수효과들은 붓질이 느껴지면 완성도가 떨어져 보이므로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꼼꼼하게 그린다 해도 완벽하게 균일한 색이 나오기 어렵고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지기 쉽지 때문에 약간의 편법을 사용했습니다.
 Photoshop엔 자동으로 효과를 넣어주는 고마운 기능이 있습니다. 종류와 활용법은 다양한데 여기에선 번개의 표현을 위해 Outer Glow를 썼습니다.




 실제로 작업한 번개 효과의 레이어 모습입니다. 가장 밝은 색(01)부터 가장 어두운 색(03)까지 세 단계로 레이어를 나눠 그린 뒤 아래의 두 레이어에 Outer Glow 효과를 넣었습니다. fx라고 표시되어 있는 것이 바로 레이어 효과입니다. Outer Glow라고 하면 외곽을 밝게 하는 기능만 있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원하는 색상을 원하는 속성으로 넣을 수 있습니다. 적용을 위해 레이어 이름 오른쪽의 빈공간을 더블클릭하면 아래와 같은 창이 열립니다.


 파랗게 표시되어 있는 Outer Glow를 체크한 뒤에 오른쪽의 속성을 조절하여 원하는 느낌을 만들면 됩니다. 오른쪽 끝의 Preview에 체크가 되어 있으면 속성을 조절하는 것에 따라 실시간으로 결과를 화면에 적용시켜 보여주므로 사용이 굉장히 편합니다.


 글씨에 적용한 모습입니다. 별다른 추가작업을 하지 않아도 위와 같이 자동으로 원하는 색을 그려진 형태의 외곽에 맞게 넣을 수 있습니다. 흔히 네온사인 효과 만드는 방법으로 알려진 것입니다. 평상시엔 그림에서 사용할 일이 많지 않지만 번개 등을 그려줄 때에 매우 유용합니다. 자세한 속성은 제가 여기에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사용해보며 감을 익히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Outer Glow를 활용해 작업한 과정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단계까지는 번개의 뼈대를 직접 그린 것이고, 세 번째는 번개를 그린 레이어에 Outer Glow 효과로 부른빛을 넣은 것입니다. 두 번째 단계까지만 보면 굉장히 허접하게 보이지만 작은 효과 하나로 간단하게 완성도가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번개까지 모두 추가하고 자잘한 부분을 다듬어 인다라천을 완성했습니다. 급하게 밤을 새서 그린 것이라 끝낼 때에는 잘 몰랐던 아쉬운 부분이 너무 많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