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sijas, the Conquerer, 4th Apostle

 이번 작업은 바칼 이후 오랜만에 그린 사도인데, 일반적인 홍보가 아닌 특별한 이유로 그린 것이라 평소와는 다른 특징적인 그림체로 그렸습니다. 카시야스의 외양에 칼이나 갑옷, 염주, 도깨비 등 동양적인 요소가 많아 그림체로 그에 맞추면 어떨까 했던 게 처음의 생각이었습니다. 동양화를 공부한 적은 없지만 자료를 참고해서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으나, 기존의 그림체와 동양화의 특징을 섞어보고 싶어 둘의 특징이 잘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두 그림체를 자연스럽게 섞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그림이 종이 밖으로 살아나오는 모습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퍼뜩 들 바로 초안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동양화의 평면성을 이용해 하반신을 동양화 기법으로 처리하여 종이에 그려진 그림의 느낌을 강조하고, 상반신은 기존의 그림체로 입체감을 강하게 주어 종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처럼 보이게끔 그릴 계획입니다. 마침 종이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모습이 차원을 넘나드는 카시야스와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대략의 방향을 정한 후 시안을 그렸습니다. 종이의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종이의 외곽을 직접적으로 묘사했습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칼을 쥐지 않은 손은 종이의 표면을 짚는 자세로 하여 빠져나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마치 물에 들어갔을 때 수면 아래에 하반신이, 수면 위에 상반신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카시야스는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강조하기 위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표현하고, 전체적으로 칙칙하고 어두울 수 있는 색감을 보완하기 위해 칼을 빼어든 모습을 그려 밝게 빛나는 금속이 다른 부분과 대비를 이룰 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또한, 호전적인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화면 밖을 노려보는 자세로 그렸습니다.




 대략의 밑그림을 구체적으로 다듬으면서 설정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습니다. 기존엔 종이를 약간 기울여 입체적인 구도가 되도록 하였으나, 이를 수정하여 종이의 외곽을 묘사하지 않고 완전한 수직면으로 배치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카시야스가 모니터 밖으로 살아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도록 표현했습니다. 이 때문에 손의 짚는 자세와 시점 등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설정을 수정하며 밑그림도 구체화시켰습니다. 먼저 자세와 근육의 형태를 잡고 피부의 여러 무늬를 그렸습니다. 머리카락은 외곽의 형태만 고려해 선을 그리면 채색이 진행될 때 명암을 묘사하며 선을 수정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미리 큰 덩어리를 입체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이것은 머리카락 뿐 아니라 모든 부분에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선은 그 자체로 그림에 충분한 매력을 줄 수 있지만, 이후의 채색을 충분히 고려한 방식으로 그려져야 위화감이 들지 않게 합쳐집니다. 사실적인 명암을 표현할 예정이라면 선은 일종의 계획서와 같은 느낌으로 그리는 것이 좋습니다. 채색을 고려하지 않은 선은 이후의 과정에서 방해가 될 뿐이어서 수정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선을 그리며 이후의 채색 과정을 예측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므로, 작업 도중에도 완성 상태를 예측 가능하도록 꾸준히 고민하고 연습해야 합니다.




 하반신은 동양화 방식으로 그릴 예정이라 굳이 밑그림을 자세히 그리진 않았습니다. 머리카락은 그릴 때마다 어렵고 귀찮네요. 그나마 최근에 노하우가 생겨서 조금 나아졌습니다. 하반신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밑그림에 맞춰 꼼꼼하게 선을 정리했습니다.




 선을 모두 정리하고 채색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그림은 피부의 면적이 가장 넓어 피부색을 채색하며 기본적인 색감을 잡았습니다. 크게 크게 칠하며 명암의 흐름과 색감을 잡는 단계이므로 깔끔한 정리에 신경 쓸 필요 없이 과감하게 채색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단계의 거친 느낌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모니터 밖으로 빠져나오는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일반적인 실내조명의 각도에 맞춰 명암을 표현했습니다. 사실 실내조명은 햇빛에 비해 조사량이 적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여러 개의 조명을 두는 경우가 많아 명료한 명암이 형성되진 않지만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어느 정도 조정했습니다. 이 때문에 몸통의 대부분은 그늘에 가려졌습니다.
 그림 전체의 균형을 고려했을 때에도 앞으로 내민 팔과 머리카락이 밝게 표현되어야 하므로 몸통을 어둡게 누르는 것이 공간감을 표현하기에 좋습니다. 종이를 짚은 손은 입체화되는 중간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평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피부 질감을 다듬으며 핏줄을 묘사하고 머리카락을 채색을 시작했습니다. 머리카락은 형태가 고정적이지 않고 아주 작은 형태가 여럿 뭉쳐 전체를 이루기 때문에, 오히려 전체적인 균형에 신경 쓰지 않으면 세부 형태에만 치중하여 흐름을 망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머리카락도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뭉텅이로 생각하며 큰 명암의 흐름을 잡아 완성까지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잘한 묘사는 있으나 평면적이고 산만하게 완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팔도 각 근육의 형태에 치중하여 명암을 흐름을 잃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머리카락의 명암을 다듬으며 장식적인 요소를 그렸습니다. 그릴 것이 염주와 칼, 피부늬 무늬 뿐이어서 다른 그림에 비해 작업량은 적지만, 그만큼 각각의 완성도가 더욱 중요하여 꼼꼼하게 묘사했습니다. 머리카락은 먼저 큰 흐름와 명암을 잡고 깔끔하게 다듬으며 정리한 뒤에 잔머리를 묘사했습니다. 처음부터 지나치게 세밀한 부분까지 묘사하면 훨씬 어려울 뿐더러 오히려 어색해지기 쉽습니다. 기본 명암을 잡고 반사광이나 영광을 묘사하는 것처럼 한 단계씩 차근차근 진행하면 어렵지 않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과 달리 피부의 무늬는 별개의 명암을 가지지 않으므로 Multiply 레이어로 간단하게 추가했습니다. 며사를 모두 마친 뒤에는 전체적으로 역광을 묘사하여 입체감을 살렸습니다. 묵직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반사광은 강하게 묘사하지 않았습니다.
 상체의 작업이 완료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하체를 그립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동양화를 공부한 적이 없어 제대로 표현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제가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는 브러쉬나 툴도 없고 직접 붓으로 그릴 능력도 없기 때문에, 보통의 브러쉬로 동양화의 필체를 그럴 듯하게 따라 그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란의 도자기처럼 그나마 실제와 비슷하게라도 보이기 위해 자료를 상당히 많이 보고 연구했습니다. 어떻게든 따라 그리려고 애를 썼는데 제대로 됐는지는 잘 몰라도,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선 그럭저럭 나와서 한숨 돌렸습니다. 자료는 필법을 알기 위해 주로 서예작품을 참고했습니다.


 갑옷 부분을 묘사했던 과정입니다. 보이는 것처럼 딱히 기술적으로 처리한 부분 없이 그저 꼼꼼하게 하나하나 묘사했습니다. 익숙치 않은 표현방식이어서 상체를 그릴 때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칼도 가장 기본이 되는 명암에 맞는 배색을 합니다. 큰 형태와 명암의 흐름을 잡은 뒤에는 담금질 과정에서 형성되는 칼날의 물결 무늬를 묘사했습니다. Multiply 레이어로 간단하게 넣은 뒤, Screen 레이어로 칼날의 빛 반사를 표현했습니다. 칼날의 색상은 칼과 조명에 따라 다양하게 보일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칙칙한 이번 그림에서는 칼이 색의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푸른 빛의 맑은 색으로 묘사했습니다.




 전체적인 묘사가 끝났으므로, 본격적으로 그림에서 나오는 듯한 연출을 표현하기 위해 바탕이 될 종이질감을 넣었습니다. 직접 종이 사진을 찍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오픈소스가 많아 어렵지 않게 구했습니다. 약간의 수정만 하여 아주 편하게 사용했습니다.
 하반신의 색상은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명암 없이 넣었고, 투명하게 처리하여 시선이 붓자국에 집중되도록 했습니다. 바지가 검은색이라 그대로 넣으니 붓자국이 하나도 보이질 않더군요.




 마지막으로 그림자와 인장을 넣고 완성했습니다. 둘 다 Multiply 레이어로 간단하게 추가했습니다. 처음 시도하는 그림체여서 고민을 많이 하며 그렸는데 제가 의도했던대로 잘 전달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