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도로스는 상당히 많은 무기를 지니고 있는 모습으로 디자인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자연물과 달리 무기와 같은 인공물은 형태가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으면 완성도가 확연히 떨어지므로 그리기 상당히 번거롭습니다. 특히 무기류는 용도에 맞는 고유의 형태가 유지되지 않으면 사실성이 떨어지고 장식이 유려한 경우가 많아 굉장히 까다로운 편입니다. 이 때문에 무기가 한두 개만 있어도 번거로운데 솔도로스는 여덟 개 이상의 무기는 가지고 있어 시작부터 눈 앞에 캄캄했습니다.
그나마 그려놓은 일러스트가 있어 고민할 것이 적지 않을까 했는데, 다시 보니 워낙 엉망이어서 참고할만 한 것도 없더군요.
새로 그리긴 해도 기본적인 특징과 분위기는 유지하고 싶었기에 전에 그렸던 것을 참고하며 그렸습니다. 다시 보니 얼굴이나 팔 등 신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가장 많이 틀렸더군요. 특히 팔은 너무 길고 굵어 굉장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얼굴 역시 특면에서 바라본 자연스러운 형태로 보이지 않고 비례도 애매하여 인상만 유지하는 정도로 옮겼습니다.
무기는 대부분 현실성이 부족한 형태로 그려졌기 때문에 실존하는 무기를 참고하여 새로 그렸습니다. 멋있는 무기가 너무 많아 고민할 것이 별로 없을 정도였습니다. 일단은 세세한 장식보다 정확한 비례와 위치에 맞는 투시가 중요하기 때문에 큰 형태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전에 그렸던 일러스트를 참고해서인지 하완이 두껍게 그려져 수정하는 한편, 오랜 수련을 강조하기 위해 최대한 자잘한 근육을 많이 묘사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인물이라 피하지방이 적은 것이 자연스럽기에, 이전에 작업했던 시란에 비해서도 혈관이나 잔근육을 훨씬 자세하게 그렸습니다. 사실 모든 근육을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라서 각 부분을 그리기 위해 사진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든근육은 옷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직접 드러나진 않지만, 옷 위로 드러나는 굴곡과 명암의 표현을 위해 큰 형태만 잡았습니다. 머리카락도 자칫 외곽선에 치중하여 입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대략의 덩어리를 표시했습니다.
무기는 앞 단계에서 잡아둔 자리는 바탕으로 자세한 형태를 묘사했습니다.
형태를 모두 정한 뒤 선을 정리했습니다. 그릴 것이 많아 이 단계까지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습니다. 많은 양의 묘사가 필요한 그림을 그리면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불필요한 묘사를 안 하는 것과 필요한 묘사를 포기하는 것은 분명 다른 문제입니다. 후자와 같은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초반 계획을 잡을 때에는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할지 보다 는 그림에 필요한 것이 얼만큼인지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작업량을 너무 생각하다가 자칫 충분히 그릴 수 있는 부분도 귀찮음이나 피곤함, 부담감 때문에 그리지 않는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제약을 거는 것입니다. 이렇다 보니 한 장을 완성하고 긴장이 풀리면 기운이 쭉 빠집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고 보람을 느끼기에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어쨌든 이렇게 선 정리를 마치면, 여기에 맞춰 채색면을 정리합니다. 먼저 레이어를 어떤 구조로 만들지 정하고 외곽을 정리한 뒤 Lock transparent pixels 속성을 적용하면 이후의 작업이 한결 수월해집니다.
분위기를 위해 얼굴을 그늘에 가릴 수 있는 빛을 설정했습니다. 전체적인 묘사가 끝난 뒤에는 반대편에서 비치는 역광을 표현하여 입체감을 살릴 계획입니다.
팔과 얼굴의 명암을 묘사한 뒤에는 혈관이나 흉터 등 피부 질감을 묘사했습니다. 역광은 다른 부분을 모두 그린 뒤에 전체적으로 들어가야 해서 아직 그리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힘줄을 살짝 표현하는 정도에서 끝내지만 솔도로스는 많은 경험이 느껴지도록 자잘한 흉터를 더 그렸습니다. 칼에 의한 흉터를 생각하며 그렸더니 결과적으로는 혈관과 큰 차이가 없어졌네요.
최종적으로는 문신도 들어갈 예정이지만, 문신은 Multiply 속성의 레이어로 처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효과적이어서 후반 작업으로 미뤘습니다.
무기를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옷보다는 피부색을 먼저 그려져야 옷의 색감을 정하기 쉬운 것처럼 무기도 장식보다는 기본이 되는 금속을 먼저 그리는 것이 이후의 작업을 수월하게 만듭니다. 반짝거리는 쇠보다는 오랜 기간의 수련을 함께 한 무기로 보이게끔 묵직한 느낌을 위주로 표현했습니다.
쇠의 표현을 마친 뒤에 그에 맞춰 나머지 부분의 대략적인 색과 명암을 잡았습니다.
나머지 부분도 하나씩 다듬었습니다. 먼저 갈색 가죽 부분의 명암을 묘사한 뒤 흠집 등을 묘사하며 질감을 표현했습니다. 가죽 특유의 광택은 피부에 비하면 꽤 반질거리지만 주변의 금속에 비해서는 광택이 약한 편이므로, 앞서 그린 둔탁한 재질의 쇠와 반사량이 많은 반짝반짝한 금속 부분의 질감을 비교하며 묘사합니다. 이 그림에선 금색이 가장 반짝여야 하므로 앞서 작업한 것들의 광택이 과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금붙이를 그렸습니다.
광택이 아주 적은 것부터 반짝거리는 것까지 순서대로, 피부, 기름 먹인 나무, 가죽, 쇠, 금붙이 등을 그렸습니다. 이로써 그림 안에서의 재질감은 기준이 확실해졌으니 조금씩 조정하며 머리카락이나 칼집, 손잡이 등 애매한 부분을 마저 그립니다. 이번 그림은 광택이 적은 것부터 차례대로 작업했지만, 질감을 표현하는 데에 익숙치 않다면 가장 반짝이는 것부터 그린 뒤 덜한 것을 차례대로 그리는 것이 훨씬 쉬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질감의 묘사를 마친 뒤, 초기에 계획했던대로 Multiply 속성의 레이어를 활용해 문신과 얼룩 등을 그리고 전체의 묘사를 마쳤습니다. 모든 부분이 그려졌으므로 균형을 깨지 않은 범위 안에서 역광을 표현했습니다. 그림 전체에서 역광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므로, 그림에 재미를 주는 정도로만 활용했습니다.
마지막으로 Screen 레이어로 반짝거리는 부분을 강조했습니다. 아주 조금만 넣었기 때문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네요. 어쨌든 일러스트는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왼편이 2007년 6월에 그렸던 것이니 3년 10개월 여만에 다시 그렸네요. 그간 제 눈도 많이 올라가고 빛에 대한 이해나 표현력도 많이 향상되어 그림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구 대를 붙여놓고 보니 마치 다른 사람의 그림 같네요.
의도했던대로 오른편의 새로운 일러스트가 완성도면에서 월등한 건 사실이지만 예전 일러스트가 가지고 있던 매력이 좀 사라진 것도 사실이어서 아쉽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완성도로 예전의 매력을 살렸으면 하는데, 아직 잡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쨌든 두 일러스트 모두 최선을 다해 작업했던 만큼 이렇게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게 되어 재밌습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기회가 되면 4년 뒤에 다시 한 번 똑같은 일러스트를 그려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로써 작업과정에 대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